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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은 한양을 배경으로 조선시대 역병과 좀비라는 판타지를 결합해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죽음과 공포가 판치는 궁궐, 성곽, 백성들의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생존 드라마는 단순한 좀비물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 배경과 사회 구조를 고스란히 녹여냈다. 이 글에서는 ‘킹덤’이 그린 조선시대의 정치·의료·사회적 현실과 드라마적 상상력을 비교 분석하며, 고증과 허구가 만나 어떤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는지 살펴본다.
1. ‘킹덤’의 역사적 배경과 판타지 스토리 융합 분석
‘킹덤’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조선 후기, 정조 사후 권력 공백으로 신흥 붕당이 각축을 벌이던 시대로 추정된다. 드라마 첫 장면에서 창궐하는 역병(조선에서는 흔히 ‘좀비 역병’이라 칭함)은 실제로 17~18세기 조선에도 전염병 창궐이 잦았던 점을 차용했다. 실제 역사 기록인 《승정원일기》《일성록》에는 장티푸스·콜레라·홍역 등의 유입과 대규모 사망 사례가 남아 있다. 이를 좀비 바이러스로 은유한 ‘킹덤’은 백성을 구하기 위한 왕실의 비밀 연구, 그리고 권력자들의 은폐 시도를 서스펜스 가득한 스토리로 풀어냈다.
드라마 속 의녀 서비(배두나 분)의 포고문 장면, 큰 대궐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는 역병 혈청 실험실, 과학적 도구 없이 침·약재·굿으로 해결하던 전통의술과 대비되는 모습은, 실제 조선의 의학 수준이 유교적·도교적 의례와 결합해 발전했음을 반영한다. 《동의보감》에 기록된 허준의 방약합편과 마찬가지로, 드라마에서는 ‘생사여탈의 혈청’을 찾기 위해 산삼·사향노루뿔 같은 귀한 약재를 사용하며 전통 의학의 상징성을 부각시킨다.
또한 궁궐 내부의 권력 다툼 서사는 역사적 흥선대원군·민비 갈등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에는 서양식 근대화를 둘러싼 개화파와 척사파의 이념 싸움이 치열했다. ‘킹덤’은 이 갈등을 왕권 계승 드라마와 역병 은폐 사건으로 압축해, 화면 곳곳에 당파 간 암투 장치를 배치했다. 예컨대 중전(김혜준 분)이 주도하는 은밀한 의례와 영의정·좌의정 세력의 비밀 회합은,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사상 대립을 은유한다.
이처럼 ‘킹덤’은 역사적 고증과 판타지 요소를 ‘균형’ 있게 융합했다. 조선 후기 방역 체계의 빈틈, 의료인력 부족, 중앙 관료들의 권력 논쟁을 좀비 전염병과 함께 그려내며, 시청자는 단순한 서바이벌 물이 아닌 ‘역사와 인간의 본질’을 마주하게 된다.
2. 좀비 바이러스 묘사와 당시 의료·방역 현실 비교
드라마에서 좀비 전염 경로는 혈액·체액 접촉으로 설정되었고, 발병 후 24시간 이내 완전 변이가 이루어진다. 실제 조선시대 전염병 대응은 역학(疫學) 집단인 ‘역너지벌(疫役)’이 담당했으며, 문헌 기록에는 감염 차단을 위해 방역초소 설치, 환자 격리, 가옥 소독(소금물 뿌리기) 같은 조치가 이뤄졌다. ‘킹덤’에서는 산성(山城) 밖 ‘초소’를 건설하고 검문·소독 절차를 도입해, 조선의 실제 방역 체계를 실감 나게 재현했다.
의료진인 의녀·관상의 등장도 역사적 사실과 궤를 같이한다. 조선 양반 가문에서는 가풍에 따라 여성 의사인 의녀를 두었고, 왕실은 내의원 의관을 통해 왕과 왕비의 건강을 돌봤다. 드라마 속 서비의 은밀한 실험실과 비밀 문서 보관실은, 실제 내의원 내 불투명한 의학 연구와 권력층 의학 독점 풍토를 반영한다.
비교적 현실적인 묘사는 역병 발생 후 백성 이탈, 기아, 도탄에 빠진 농민들의 모습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가뭄·흉년·전염병이 겹치면 농민 봉기가 빈번했음을 기록했는데, ‘킹덤’에서는 좀비 사태로 인한 식량 부족·치안 붕괴를 통해 사회 불안을 극대화했다. 이처럼 ‘킹덤’은 좀비 바이러스라는 극단적 설정을 활용해, 조선 시대 의료·방역 현실의 한계와 그로 인한 사회 붕괴 위험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드라마는 ‘응급 처치’ 장면에서 지혈·심폐소생술 대신 전통침법과 약초 달인 물을 사용하도록 그렸다. 실존 《향약집성방》에는 두창·전염병 치료를 위한 향약이 기록돼 있는데, ‘킹덤’은 이를 응용해 ‘생명 연장용 혈청’을 단서로 삼았다. 비록 현실에서는 즉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드라마적 긴장감을 위해 전통 의약과 현대 바이러스 설정을 절묘히 결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3. 조선시대 사회 구조와 권력 투쟁 vs ‘킹덤’ 서사 구조
조선시대는 왕·양반·중인·상민·천민으로 이루어진 엄격한 신분제가 지배했다. ‘킹덤’에서는 신분 간 갈등을 좀비 사태와 연결 지어, 양반 관료층은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해 전염병 정보를 은폐하고, 평민·중인 계층은 목숨을 건 도주와 분투를 벌인다. 이는 역사 속에서 권문세가가 재난을 기회 삼아 세력을 확장했던 모습과 유사하다.
예컨대 드라마 초반, 좌의정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은 역병 확산 사실이 드러나면 왕권이 흔들릴 것을 우려해 비밀리에 역병 격리소를 세우고 자신들의 사당에서 의식을 올린다. 이는 실제 조선 후기 각종 흑사병·두창 발생 시 지방관이 백성 대신 자신들의 자제만 구휼했다는 기록과 맞닿는다. 백성에 대한 무책임이 권력 유지 논리로 변질되는 양상은 드라마의 주요 갈등 축이다.
반면 서민·중인 계층 인물들은 마수(馬수)·수레꾼·의녀 같은 직업군으로 대표되어, 계층 이동의 불가능함과 절박함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백운동서원기》 등 고문서 서술에 따르면, 신분 상승은 극소수만 이룰 수 있었고 대부분 평민은 재난과 빈곤에 직면했다. ‘킹덤’은 이 현실을 반영해, 좀비 사태 속에서도 서로를 돕고 조직을 꾸려 살아남으려는 연대의 서사를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인 왕실 쿠데타는 실제 역사적 반정(反正) 사건을 연상시킨다. 예를 들어 광해군·인조반정, 병자호란 이후 탕평책 등 권력 교체 과정에서 군사·정치 세력이 음모를 꾸몄던 사실과 마찬가지다. ‘킹덤’에서는 좀비 사태를 계기로 권력 투쟁이 극한으로 치닫고, 최종적으로 왕권과 백성 보호 사이에서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묻는다.
이처럼 ‘킹덤’은 조선시대의 정치·사회 구조와 권력 투쟁을 판타지 좀비 서사로 전환해, 역사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층적 재미를 제공한다. 시청자는 드라마를 통해 ‘과거의 교훈’을 오늘날 위기 관리와 리더십 문제로 자연스럽게 연결해 볼 수 있다.